본문 바로가기

연예

50년대 섹시 스타 <브리짓 바르도>

 

50년대 프랑스 섹시스타

 

 

브리짓 바르도 (Brigitte Bardot)

1. 개요

브리짓 바르도(Brigitte Bardot, 1934년 9월 28일 ~ )는 프랑스 출신의 전직 영화 배우, 가수, 모델이며, 현재는 동물 보호 운동가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1950~1960년대 세계적인 섹스 심벌(sex symbol)로 유명했으며, 특히 그녀의 자연스럽고 관능적인 매력으로 프랑스 영화계를 넘어 헐리우드에서도 큰 영향력을 미쳤습니다.

 

 


2. 생애와 경력

  • 유년기
    • 1934년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남.
    • 어린 시절부터 발레를 배웠으며, 모델 활동을 하면서 패션계에서 주목받기 시작.
  • 배우로서의 성공
    • 1952년 영화 "Le Trou normand" (노르망디의 구멍)으로 데뷔.
    • 1956년 로저 바딤(Roger Vadim) 감독의 "그리고 신은 여자를 창조했다 (Et Dieu... créa la femme)"에 출연하면서 세계적인 스타로 부상.
    • 이후 "밤의 요정 (La Parisienne, 1957)", "진실 (La Vérité, 1960)", "경멸 (Le Mépris, 1963)" 등 여러 작품에서 연기력을 인정받음.

 

  • 가수 및 예술 활동
    • 1960년대 후반부터 가수로도 활동, 세르주 갱스부르(Serge Gainsbourg)와 함께 "Harley Davidson", "Je t’aime… moi non plus" 등의 곡을 발표.
    • 패션 아이콘으로서도 영향력을 미쳐 '바르도 넥라인', '비키니의 대중화' 등에 기여.
  • 은퇴와 동물 보호 활동
    • 1973년 39세의 나이에 영화계를 떠나 동물 보호 운동가로 변신.
    • 자신의 재단 "브리짓 바르도 재단 (Fondation Brigitte Bardot)"을 설립하여 동물 권리 보호 활동을 적극적으로 펼침.

3. 브리짓 바르도의 스타일과 영향력

  • 그녀는 프랑스 누벨바그(Nouvelle Vague) 영화의 대표적인 아이콘으로, 자유롭고 감각적인 연기로 새로운 여성상을 제시함.
  • 여성 패션에서 비키니 대중화에 기여했으며, 그녀의 스타일은 현대 패션에도 영향을 미침.
  • 성적 개방성과 자유로움을 상징하는 인물로, 1950~60년대 보수적인 사회 분위기에 반기를 든 인물 중 한 명.
  • 마릴린 먼로, 오드리 헵번과 함께 20세기 중반을 대표하는 여성 배우로 꼽힘.

 


4. 논란과 평가

  • 동물 보호 운동가로 활동하면서 몇 차례 논란이 되기도 함.
    • 예를 들어 무슬림 이민자 문제와 프랑스 문화에 대한 비판적 발언으로 인해 몇 차례 법적 처벌을 받은 적 있음.
  • 그럼에도 불구하고 배우로서의 업적과 동물 보호 활동은 많은 존경을 받고 있음.

 


5. 대표 작품

  • 그리고 신은 여자를 창조했다 (1956)
  • 밤의 요정 (1957)
  • 진실 (1960)
  • 경멸 (1963)
  • 비바 마리아! (1965)

6. 현재 활동

브리짓 바르도는 현재 공식적으로 연예계를 떠났지만, 동물 보호 운동을 계속하면서 대중과 소통하고 있습니다. 여전히 프랑스 문화와 사회 문제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밝히는 인물로서 주목받고 있습니다.

 


 

브리짓 바르도가 배우로 입문하게 된 계기는 어린 시절 발레와 모델 활동을 통해 자연스럽게 영화계로 연결되었기 때문입니다.

 

 


1. 어린 시절 – 발레리나의 꿈

  • 바르도는 어린 시절부터 예술에 관심이 많았으며, 특히 발레를 전공했습니다.
  • 1947년(13세)에는 파리 국립 고등음악원 무용학교(Conservatoire de Paris)에 입학하여 본격적으로 발레를 공부했으며, 당대 유명 무용가였던 보리스 크니아제프(Boris Knyazev) 밑에서 훈련을 받았습니다.
  • 하지만 영화계로의 길을 걷게 되면서 결국 발레리나의 꿈을 접게 됩니다.

2. 모델 활동을 시작하면서 주목받음

  • 15세(1949년)에 바르도의 아름다운 외모가 주목받아 패션 모델로 활동하게 되었습니다.
  • 그녀는 프랑스 패션지 〈엘르(ELLE)〉의 표지 모델로 등장하면서 큰 인기를 얻게 되었습니다.
  • 이때 바르도의 표지를 본 영화 감독 로저 바딤(Roger Vadim)이 그녀를 눈여겨보게 됩니다.

 


3. 영화계 입문 – 로저 바딤과의 만남

  • 로저 바딤은 바르도의 가능성을 보고 그녀를 영화계로 이끌었습니다.
  • 1952년, 18세의 바르도는 영화 *"Le Trou Normand (노르망디의 구멍)"*으로 데뷔하게 됩니다.
  • 이후 바딤과 결혼(1952~1957)하면서 그녀의 영화 경력은 더욱 탄력을 받게 됩니다.

4. 스타로 떠오른 계기

 

  • 1956년, 바딤 감독이 연출한 "그리고 신은 여자를 창조했다 (Et Dieu... créa la femme)"가 개봉하면서 그녀는 단숨에 세계적인 스타가 됩니다.
  • 이 영화에서 바르도는 자유롭고 도발적인 여성상을 연기하며 프랑스를 넘어 전 세계적으로 유명해졌습니다.

 

 


정리: 배우가 된 과정

1️⃣ 발레리나를 꿈꿨지만 모델 활동으로 방향을 바꿈
2️⃣ 패션 잡지 표지 모델로 주목받음
3️⃣ 로저 바딤 감독이 그녀를 캐스팅하면서 영화계 입문
4️⃣ 1956년 영화 "그리고 신은 여자를 창조했다"로 세계적인 스타가 됨

즉, 발레 → 모델 → 영화 배우라는 자연스러운 흐름을 거치며 연기자로 자리 잡게 된 것입니다. 🎬✨

 
 
 

 

그렇다면..그녀의 사생활은 어땠을까요?
 브리짓 바르도의 사생활은 화려하면서도 논란이 많았던 것으로 유명합니다. 그녀는 여러 차례 결혼과 연애를 했으며, 연예계 은퇴 후에도 강한 성격과 직설적인 발언으로 꾸준히 주목받았습니다.

 

 


1. 연애와 결혼 생활 💔💍

브리짓 바르도는 4번 결혼했으며, 수많은 연애 스캔들로도 화제가 되었습니다.

① 로저 바딤 (1952~1957)

 

  • 프랑스 영화 감독 로저 바딤과 18세에 결혼.
  • 하지만 바르도의 자유분방한 성격과 유명세로 인해 결혼 생활이 흔들렸고, 결국 이혼.
  • 로저 바딤은 훗날 바르도를 주연으로 한 영화 "그리고 신은 여자를 창조했다 (1956)"를 연출, 그녀를 세계적 스타로 만듦.

② 자크 샤리에 (1959~1962)

두번째 남편 자크 세리에

 

  • 프랑스 배우 자크 샤리에와 결혼.
  • 이 결혼에서 바르도의 유일한 아들인 니콜라 샤리에(Nicolas-Jacques Charrier, 1960년생)가 태어남.
  • 하지만 바르도는 임신 기간을 힘들어했고, 출산 후에도 모성애를 느끼지 못했다고 고백.
  • 이후 아들은 아버지와 조부모가 키웠으며, 바르도와는 멀어진 관계로 성장.
  • 이혼 후 바르도는 심각한 우울증을 겪었고, 한때 자살 시도까지 함.

③ 군터 작스 (1966~1969)

 

보신탕 문화를 놓고 한국을 폄하하는 발언으로 유명한 프랑스의 옛 육체파 여배우 브리짓트 바르도의 전 남편으로 유명한 독일 출신의 사진작가 군터 작스가 권총자살로 삶을 마감했다. 향년 78세.

 

 

  • 독일 출신의 억만장자이자 플레이보이인 군터 작스(Gunter Sachs)와 결혼.
  • 럭셔리한 결혼 생활을 했지만, 바르도의 자유로운 성격과 충돌하면서 3년 만에 이혼.
  • 작스는 자신이 인식 능력이 떨어졌고 치유가 불가능하다는 진단을 받고 사람들을 잘 알아보기 어렵게 된데다 다른 사람들과의 의사 소통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스스로 목숨을 끊겠다는 말을 해왔었다.그의 화려한 여성 편력과 화가 앤디 워홀과의 친분은 독일 대중매체들의 단골 기삿거리였다.
  • 작스는 1966년 바르도와 재혼해 1969년 이혼할 때까지 짧은 부부 생활을 했었다.
  • 그는 1932년 부유한 기업가 집안에서 태어나 물려받은 막대한 유산으로 패전국 돌일에서 화려한 삶을 살았다. 그는 특히 사진작가와 다큐멘터리 영화감독으로 이름을 떨쳤다.

④ 베르나르 도르말 (1992~현재)

  • 1992년, 극우 정치 성향을 가 *베르나르 도르말(Bernard d'Ormale)과 결혼.
  • 바르도가 58세일 때 결혼하여 현재까지 함께 지내고 있음.
  • 도르말은 프랑스 극우 정당과 관련이 있어, 바르도의 논란성 발언에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도 있음.

 


2. 유명한 연애 스캔들 💘🔥

브리짓 바르도는 공식적인 결혼 외에도 수많은 연애 스캔들로 유명했습니다.

  • 배우 장 루이 트랭티냥(Jean-Louis Trintignant) – *"그리고 신은 여자를 창조했다"*에서 호흡을 맞추며 열애
  • 가수 질베르 베코(Gilbert Bécaud)
  • 배우 사미 프레이(Sami Frey)
  • 가수 세르주 갱스부르(Serge Gainsbourg) – 함께 노래 "Bonnie and Clyde" 발표
  • 기타리스트 사샤 디스텔(Sacha Distel)

 

이처럼 그녀는 개방적이고 열정적인 사랑관을 가진 인물로, 당시 보수적인 사회에서는 논란이 되기도 했습니다.


3. 논란과 스캔들 ⚡🗯️

바르도는 직설적인 성격과 강한 신념으로 인해 여러 차례 논란이 되었습니다.

 

수년 동안 한국의 개고기 문화에 대해 독설에 가까운 표현으로 질타와 비난을 이어오고 있는 프랑스 동물보호운동가 브리지트 바르도(BB)가 요즘 자국의 말고기 문화에 대한 강도 높은 반대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① 정치적 발언 및 논란

  • 프랑스의 이민 문제와 이슬람 문화에 대해 강하게 비판하며 논란을 일으킴.
  • 특정 소수 민족과 종교에 대한 부정적인 발언으로 여러 차례 벌금형을 선고받음.
  • 남편 베르나르 도르말이 극우 정치 성향을 가졌기 때문에, 이에 영향을 받았다는 분석도 있음.

② 모성애 부족 발언

  • 자신의 아들 니콜라 샤리에를 출산했지만, 인터뷰에서 "나는 좋은 엄마가 아니었다."고 솔직하게 말함.
  • 아들과 거의 연락하지 않고 지냈으며, 이는 대중들에게 큰 충격을 줌.
  • 바르도는 후에 "나는 아이보다 동물을 더 사랑한다."라고 말해 논란을 더 키움.

③ 반(反) 모피, 동물 보호 운동

  • 동물 보호 운동가로 변신한 이후 모피 산업과 동물 실험을 강하게 반대.
  • 여러 차례 패션 브랜드, 화장품 회사, 도축업계 등을 비판하며 강경한 입장을 취함.
  • 동물 보호 활동에 헌신한 점은 긍정적인 평가를 받지만, 때때로 과격한 발언으로 논란을 일으키기도 함.

 

 


4. 현재의 삶 🏡🐾

  • 현재(2025년 기준) 90세이며, 남편 베르나르 도르말과 함께 프랑스 남부의 생트로페(Saint-Tropez)에서 조용한 생활을 하고 있음.
  • 여전히 "브리짓 바르도 재단 (Fondation Brigitte Bardot)"을 통해 동물 보호 운동에 힘쓰고 있음.
  • 공식적인 연예계 활동은 없으며, 가끔 자서전이나 성명 발표 등을 통해 사회적 이슈에 대한 의견을 내놓음.

🔎 결론: 브리짓 바르도의 사생활은?

화려한 연애와 4번의 결혼
유일한 아들과의 소원한 관계
논란 많은 정치적 발언과 사회적 이슈
동물 보호 운동에 헌신하며 은둔 생활

 

바르도의 인생은 영화 속 이야기처럼 열정적이고, 논란이 많고, 자유분방한 삶 그 자체였습니다. 🎭✨